연말정산 시즌도 아닌데 회사 인사팀에서 메일이 왔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만기 도래자는 운용 방법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내용. 몇 년째 그냥 두고 있었던 그 통장을 그제야 클릭해봤다.
DC형이라는 글자만 봤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아니, 정확히는 가입할 때 설명을 듣긴 들었는데 그게 회사가 골라주는 거니까 별생각 없이 사인만 했던 거다. 이번엔 작정하고 DC형이 뭐고 DB형이랑 뭐가 다른지, 내 통장은 지금 잘 굴러가고 있는 건지 끝까지 따라가봤다.
DB형과 DC형, 결국 누가 위험을 떠안느냐의 문제
퇴직연금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크게 DB형(확정급여형)과 DC형(확정기여형) 두 가지로 나뉜다.
DB형은 퇴직 시 받을 급여가 미리 확정돼 있다.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하는, 옛날 퇴직금 계산법 그대로다. 회사가 적립금을 통합해서 운용하고, 운용 결과가 어떻든 정해진 금액을 줄 책임은 회사가 진다. DC형은 다르다. 회사가 매년 임금총액의 1/12 이상을 근로자 개인 계좌에 넣어주고, 그 이후 운용은 근로자 본인 몫이다. 투자 성과에 따라 퇴직할 때 받는 금액이 달라진다.
결국 핵심은 누가 운용 리스크를 지느냐다. DB형은 회사가, DC형은 내가 진다. 이 한 줄을 이해하고 나니 그동안 막연하게 어렵게만 느껴졌던 두 단어가 갑자기 단순해졌다.

그땐 다들 원리금보장형에 묻어두고 신경 안 썼다
DC형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137조 원으로, 2024년 말 113.9조 원 대비 20.3% 증가했다. 그런데 정작 이 돈이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를 보면 좀 다른 그림이 나온다.
2024년 말 기준 DC형 적립금의 67%가 원리금보장형(예적금형)에 몰려 있었다. 이 상품군 수익률은 3.67%에 그쳤단다. 반면 실적배당형(펀드 등 원리금비보장형)을 선택한 계좌는 9.96%를 기록했다. 거의 세 배 가까운 격차다.
이게 그동안 다들 해온 방식이었다. 가입할 때 안내받은 기본 옵션이 예적금형이면 그냥 거기 두고, 매년 한 번 오는 운용현황 안내문도 제목만 보고 넘겼다. 나도 그랬다. 회사가 정해준 대로 두면 알아서 잘 굴러갈 거라고 믿었던 건데, 그 믿음의 대가가 수익률 6%포인트 차이였던 거다.
지금은 격차가 더 벌어졌다, 그리고 다들 알면서도 못 옮긴다
2025년 한 해 동안은 실적배당형 상품 수익률이 원리금보장형 누적 수익률을 다시 앞섰고, 임금상승률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보도됐다. 증권사 중에서는 삼성증권이 21.02%, NH투자증권이 20.00%를 기록해 증권사 평균(약 17%대)을 웃돌았단다.
그런데 같은 시기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현황을 보면 이상한 게 보인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운용지시를 따로 하지 않을 때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자동 운용되도록 2023년 7월 도입된 제도다. 2025년 말 기준 운용 적립금은 53조 3천억 원, 지정 가입자 수는 734만 명으로 전년보다 각각 32.9%, 16.3% 늘었다.
문제는 위험도별 쏠림이다. 투자유형별로 보면 안정형 적립금이 45조 5천억 원으로 전체의 85.4%를 차지한다. 도입 3년이 지났는데도 가입자 대부분이 가장 보수적인 안정형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이쯤 되니 숫자 읽는 속도가 느려졌다. 적극형 수익률이 14.9%, 중립형이 10.8%인데 안정형은 2.6%에 그쳐 전체 평균 수익률이 3.7%까지 깎였다는 보도도 나온다. 수익률이 좋아진 게 분명한데도 다들 여전히 안정형에 몰려 있다는 게, 찾아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다. 정보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한번 정해진 운용 방법을 바꾸러 들어가는 그 한 번의 클릭이 그렇게 어려운 거구나 싶었다.

손 놓고 있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겠더라
DC형 가입자가 직접 할 수 있는 관리법을 업계 가이드에서 종합해보면 네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알아야 한다. DC형·IRP는 법적으로 위험자산(주식형 펀드 등) 비중이 최대 70%로 제한돼 있다. 나머지 30% 이상은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한다. 단 TDF(타깃데이트펀드)나 디폴트옵션 지정 상품 일부는 이 한도와 무관하게 100% 투자가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상품 구조마다 다르니 가입 상품 약관을 확인하는 게 맞다.
다음은 리밸런싱이다. 1년에 1~2회 정도 자산 비중을 점검하고 원래 목표 비율로 재조정하는 게 권장된다. 시장이 흔들리면서 특정 자산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거나 작아지는데, 그걸 다시 맞춰주는 작업이다.
TDF 활용도 한 방법이다. 예상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채권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펀드라, 직접 리밸런싱하기 부담스러운 사람한테는 편한 선택지다. 다만 고를 때 본인 은퇴 예정 연도와 펀드 목표 연도가 맞는지, 글라이드 패스(나이에 따른 위험자산 축소 속도)가 본인 성향과 맞는지는 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기본인데도 가장 안 지켜지는 것. 원리금보장형 방치 탈피다. 앞서 본 수익률 격차를 생각하면, 본인 투자 성향에 맞는 한도 안에서 실적배당형 비중을 일부라도 가져가는 게 장기적으로는 유리하다는 게 업계 공통 조언이다. 연금저축펀드·IRP 세액공제 글을 쓸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결국 퇴직연금이든 개인연금이든 “넣어두기만 하면 끝”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하는구나 싶다.
수익률 비교는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서 제도별·상품유형별·기간별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람한테 유리한가, 그리고 옮길 수는 있는가
DB형이 유리한지 DC형이 유리한지는 결국 개인 임금 곡선과 근속 패턴에 달려 있다.
| 기준 | DB형이 유리한 경우 | DC형이 유리한 경우 |
|---|---|---|
| 임금상승률 | 승진 빠르고 임금이 가파르게 오를 때 | 임금 정체, 투자수익률을 더 높일 자신 있을 때 |
| 근속연수 | 한 회사 장기근속 예상될 때 | 이직이 잦을 때 |
| 이직 시 처리 | 이직마다 퇴직금 정산, 복리효과 제한적 | IRP로 그대로 이전해 운용 지속 가능 |
여기에 한 가지 더, 임금피크제 적용 예정자라면 특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 임금피크제 적용 전, 즉 임금이 정점일 때 DC형으로 전환하면 그 정점 임금을 기준으로 적립 효과를 살릴 수 있다는 의견이 금융업계에서 나온다. 반대로 임금피크제 적용 후에도 DB형에 남아있으면 낮아진 임금이 평균임금 산정에 영향을 줘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부분은 1차 공식자료보다는 업계 해설 자료에서 확인된 내용이라, 실제 적용 여부는 회사 퇴직연금 규약을 직접 봐야 한다.
결국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고 장기근속이 예상되면 DB형, 임금이 정체되거나 이직이 잦거나 투자에 자신 있으면 DC형이 유리하다는 게 업계 공통 설명이다. 정확한 유불리는 본인 임금 곡선에 따라 달라지니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단서도 같이 적어둔다.

따져보고 나니 옮기고 싶은 쪽이 생긴 사람도 있을 거다. 전환이 가능한지부터 봐야 한다. 회사가 DB형 또는 DC형 중 하나만 도입하고 있다면 전환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회사가 두 제도를 같이 운영하고 있어야 전환을 고려할 수 있다.
복수 제도를 운영 중이더라도 개인별 전환을 허용할지는 회사의 퇴직연금 규약에 별도로 명시돼 있어야 한다. 규약에 전환 조항이 없으면 못 옮긴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급여제도를 변경하려면 근로자대표(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도 필요하다.
전환이 가능한 경우라면 사내 인사팀·총무팀 등 담당 부서에 정해진 시기(통상 연 1회 등 규약에 정한 주기)에 신청하면 된다. 이때 전환 시점까지 DB형에 쌓인 적립금을 그대로 DB형 계좌에 둘지, DC형 계좌로 옮겨 새로 운용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구체적 처리 방식은 회사 규약과 운용사업자에 따라 다르다.
전환 가능 시기나 전환 후 재전환(DC→DB) 가능 여부를 명확히 통일한 법정 기준은 확인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되어 있나”를 인사팀에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라는 결론이다.
이름도 평가 방식도, 2026년 들어 다 바뀌었더라
2026년부터 디폴트옵션 상품명이 ‘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에서 ‘안정형·안정투자형·중립투자형·적극투자형’으로 바뀌었다. 위험도 명칭 자체가 투자 회피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53조 원 규모로 커진 디폴트옵션에 대해 수익률 중심의 정부 평가를 처음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제도가 잘 정착됐는지만 봤다면, 이제는 실제로 돈을 잘 굴렸는지를 따지기 시작한 거다. 디폴트옵션 적립금 규모로는 KB국민은행이 10조 3천억 원으로 1위를 기록했고, TDF 등 자산배분 성과 면에서는 미래에셋이 강세를 보인다는 보도도 있다.
2026년 6월 현재 시점 최신 통계는 별도로 확인되지 않는다. 위 수치는 2025년 말 기준이고, 이후 갱신된 통계는 통합연금포털에서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적어둔다.
회사에서 온 그 메일, 다시 열어봤다. 디폴트옵션 운용 방법을 다시 정하라는 그 메일.
이번엔 그냥 닫지 않고 통합연금포털에 로그인부터 했다.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