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나는 “연말정산에서 148만원 돌려받는다”는 한 줄만 보고 IRP를 텄다. 세액공제. 그 단어 하나가 어찌나 든든하던지, 은행 앱에서 계좌 개설 버튼을 누르는 데 5분도 안 걸렸다. 연금저축이랑 IRP가 뭐가 다른지도 모르면서 그냥 “직장인이면 900만원, 16.5%” 그 공식만 외우고 있었다.
근데 올해 봄에 아이 학원비가 갑자기 몰리면서 그 돈을 좀 빼볼까 하고 앱을 열었다가 멈칫했다. 뺄 수가 없더라. 정확히는 빼면 뜯긴단다. 그때부터 이 계좌를 다시 들여다봤는데, 환급액 148만원 뒤에 내가 안 보고 지나친 게 꽤 있었다.
같은 연금계좌인데 성격이 이렇게 다르다
먼저 헷갈린 게 연금저축과 IRP를 그냥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둘 다 세액공제 되는 노후 계좌인 건 맞는데, 막상 KB국민은행 연금저축·IRP 비교 자료를 놓고 보니 성격이 갈렸다.
| 구분 | 연금저축(펀드) | IRP |
|---|---|---|
| 가입 자격 | 소득 없어도 누구나 | 소득 있는 사람만 |
| 세액공제 한도 | 단독 600만원 | 연금저축과 합산 900만원 |
| 위험자산 비중 | 100%까지 | 최대 70%까지 |
| 중도인출 | 가능(세금 붙음) | 법정 사유만 |
내가 걸린 게 바로 저 오른쪽 아래 칸이었다. 연금저축은 급하면 뺄 수라도 있는데(대신 세금), IRP는 주택 구입이나 장기요양 같은 법으로 정한 사유가 아니면 부분 인출 자체가 막혀 있다. 나는 유동성 걱정도 없이 덜컥 IRP부터 채운 거였다. 강제저축 성격을 원했으면 잘한 선택이지만, 나처럼 “혹시 급하면”이 마음 한구석에 있는 사람은 연금저축 쪽이 숨통이 트인다.

그래서 어느 걸 먼저 채워야 하나
여기서 “그럼 둘 다 만들어야 하나” 싶었는데, 이게 한도 구조를 알면 답이 나온다. 국세청 연금계좌 세액공제 안내를 보면 연금저축은 아무리 많이 넣어도 세액공제는 600만원까지만 인정된다. IRP는 별도 한도가 아니라 연금저축과 합쳐서 900만원까지다.
그러니까 900만원을 꽉 채워 148만 5,000원(총급여 5,500만원 이하 기준, 16.5%)을 다 받으려면 계산이 이렇게 된다. 연금저축에 600만원 먼저 채우고, 나머지 300만원을 IRP에 넣는 것. 상품 자유도 높고 급할 때 그나마 뺄 수 있는 연금저축을 앞에 두고, IRP는 나머지만 담는 순서다.
아니, 쓰고 보니 나는 그 순서를 거꾸로 했다. IRP부터 채웠으니 유동성 없는 칸을 먼저 꽉 채운 셈이다. 600만원만 넣을 사람이라면 사실 연금저축 하나로 끝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좌를 둘이나 만들었다.
참, 한 가지 더. 세액공제 한도랑 납입 한도는 다르다. 연금저축과 IRP 합산 납입 한도는 연 1,800만원인데, 그중 세액공제 대상은 900만원까지다. 나머지는 공제는 안 되지만 과세이연으로 굴릴 수는 있다는 거였다.
중도해지, 돌려받은 것보다 더 토해낼 수 있다
가장 뜨끔했던 대목이 여기다. 세액공제 받은 원금이랑 그동안 굴린 수익을 중도에 깨면 16.5% 기타소득세가 붙는다. 농민신문 기사 제목이 “IRP 중도해지 시 세금환급액 이상 토해내야”였는데, 처음엔 과장인 줄 알았다.
따져보니 진짜였다. 넣을 때 13.2%로 공제받은 사람(총급여 5,500만원 초과)이 나중에 16.5%로 토해내면 그 차이만큼 손해다. 나처럼 16.5%로 받았어도 안심할 게 아닌 게, 그동안 불어난 운용수익에까지 16.5%가 붙는다. 몇 년 굴려서 수익이 났으면 그 수익까지 세금 대상이 되는 구조다.
물론 예외는 있다. 사망, 해외이주, 3개월 이상 요양, 개인회생·파산, 천재지변 같은 부득이한 사유로 깨면 16.5% 대신 낮은 세율로 감면된다. 근데 이건 말 그대로 인생에 큰일이 났을 때 얘기지, 학원비 몰렸다고 적용되는 게 아니다. 결국 원칙은 하나로 정리됐다. 정말 55세까지 안 건드릴 수 있는 돈만 넣는 것. 나는 그 원칙을 반대로 배운 셈이다.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도 세금이 있더라
“뺄 때 세금 또 내는 거면 결국 똑같은 거 아냐?” 이게 마지막 의문이었다. 세액공제 받고 굴린 돈은 공짜가 아니라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과세된다. 다만 받을 때 세율이 낮다는 게 핵심이다.
만 55세 이상, 계좌 개설 5년 경과면 연금 개시가 가능한데, 나눠 받으면 연금소득세가 나이에 따라 5.5%(55~69세), 4.4%(70~79세), 3.3%(80세 이상)로 낮아진다. 넣을 때 16.5% 돌려받고 뺄 때 3.3~5.5%만 내니, 그 차이만큼이 이득이고 그동안 세금 안 떼고 굴린 복리 효과가 더해진다. 그러니까 아까 “결국 똑같다”는 내 생각은 틀렸던 거다.
여기에 한 가지 관리 포인트가 있다. 사적연금 연간 수령액 합계가 1,500만원 이하면 저 낮은 세율로 분리과세되고 끝난다(2024년부터 1,200만원에서 상향, 2026년 7월 현재 유지). 1,500만원을 넘으면 초과분에 종합과세나 16.5% 분리과세 중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나중에 목돈을 한 해에 몰아 받기보다 수령 기간을 길게 나눠 연 1,500만원 이하로 관리하는 게 절세의 요령이라는 거였다.
참고로 이 계좌들과 성격이 다른 ISA는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옮기면 추가 세액공제가 붙는다. 예전에 ISA 활용법을 정리하면서 서민형과 일반형 사이에서 멈칫했던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ISA 만기 뒤 연금으로 갈아타는 흐름까지 보면 이 세 계좌가 하나로 이어진다.
계좌를 다시 열어보니 148만원이라는 숫자만 반짝이던 화면이 이제는 좀 다르게 보인다. 돌려받는 손도 있고, 잘못 깨면 뜯기는 손도 있고, 나중에 천천히 받아야 덜 내는 손도 있고. 손이 세 개쯤 달린 계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