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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계약 전 확인사항, 등기부만 깨끗하면 되는 줄 알았다

옆집엄마

전세 계약 전 확인사항을 찾다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등기부등본이다. 나도 처음 전셋집 구할 때 인터넷등기소에서 700원 내고 하나 뗐는데, 표제부까지는 어찌저찌 읽었다. 문제는 을구. 근저당권이니 채권최고액이니 하는 글자 앞에서 한참을 멈췄다. 이게 뭔데 이렇게 큰 숫자가 찍혀 있나.

그때는 등기부만 깨끗하면 안전한 줄 알았다. 아니, 정확히는 세금 체납은 등기부에 아예 안 나온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 얘기를 순서대로 풀어본다.

을구에서 처음 멈춘 채권최고액

등기부등본은 크게 세 칸이다. 표제부는 집 주소·면적, 갑구는 소유자, 을구는 담보권. 계약하려는 집 주소·호수가 등기부랑 정확히 같은지 표제부에서 먼저 맞춰보고, 갑구에서 지금 소유자가 계약 상대(임대인)와 같은 사람인지 확인한다. 여기서 가압류나 신탁 등기 같은 게 붙어 있으면 그때부터 조심해야 한다. 신탁 등기가 되어 있으면 처분 권한이 신탁회사에 있어서 임대인과 맺은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더라.

내가 오래 멈췄던 을구가 진짜였다. 근저당권 옆에 붙은 채권최고액이 실제 대출금보다 훨씬 크게 찍혀 있어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채권최고액은 실제 빚의 110~120%로 잡는다. 그러니 그 숫자가 곧 임대인이 진 빚은 아니라는 것. 다만 이 근저당 설정일이 내 대항력 발생일보다 앞서면,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이 나보다 먼저 배당받는다는 게 핵심이다.

HUG 전세사기예방센터에서도 등기부에서 표제부(건물현황)·갑구(소유자)·을구(저당권)를 순서대로 보라고 안내한다. 나는 이 순서대로 세 칸을 훑고 나서야 을구 숫자가 왜 중요한지 겨우 감이 왔다.

등기부등본 표제부·갑구·을구 확인 순서

등기부에 안 나오는 게 더 무서웠다

여기서 착각 하나가 깨졌다. 등기부만 멀쩡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정작 등기부에 안 찍히는 게 보증금을 더 위협했다. 바로 임대인의 세금 체납이다.

집주인이 세금을 안 냈으면,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금이 내 보증금보다 먼저 배당될 수 있다. 특히 당해세(그 집에 직접 붙는 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같은 것)는 원래 세입자 확정일자보다 늦게 부과됐어도 우선 배당 대상이었다. 그런데 2023년 4월 국세기본법이 바뀌면서, 임차인의 확정일자가 당해세 법정기일보다 앞서면 그 보증금은 당해세보다 먼저 배당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확정일자를 하루라도 빨리 받아두는 게 세금 앞에서도 방패가 된다는 얘기.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세금 체납은 계약 전에 확인할 방법이 있다. 2023년 4월부터는 임대인 동의가 없어도 세입자(계약 예정자 포함)가 관할 세무서에서 임대인의 미납 국세를 열람할 수 있다. 예전엔 집주인 눈치 보느라 못 물어봤을 일을, 이제는 동의 없이 직접 걸러낼 수 있게 된 셈이다. 근저당만 보고 안심하던 나로선 이게 제일 크게 다가왔다.

이 집이 반환보증에 들 수 있는 집인가

선순위 채권이랑 내 보증금을 더해서 시세의 얼마쯤인지도 따져봤다. 흔히 (근저당 채권최고액 + 내 보증금)이 집값의 70~80%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본다. 소스마다 70%로 잡기도, 80%로 잡기도 하는데, 나는 그냥 보수적으로 70%를 기준선으로 두고 80%는 절대 넘기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경매 때 보증금을 다 못 받는 이른바 깡통전세 위험이 커지니까.

다가구주택은 여기서 한 번 더 걸린다. 건물 전체 주인이 한 명이라 등기부만 봐서는 나보다 먼저 들어온 세입자들 보증금이 안 보인다. 그러니 다가구면 임대인이나 중개사에게 선순위 세입자 보증금 총액 자료를 꼭 달라고 해야 내 진짜 순위가 보인다.

가장 확실한 안전판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다. 계약 만료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주면 보증기관이 대신 내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받아내는 제도. 아래는 2026년 기준으로 정리한 세 기관 차이인데, 한도·보증료율은 상품과 시기에 따라 바뀌니 가입 전에 각 기관 공식 사이트에서 꼭 다시 확인해야 한다.

기관 한도 기준 특징
HUG 주택가격 기준 최대 90% 소득 무관, 가장 널리 쓰임
HF 임차인 연소득 최대 5배 보증금 상한 없음, 보증료율 저렴
SGI서울보증 민간 고가 주택 가능, 보험료 높은 편

특히 빌라·다세대는 HUG의 126% 룰을 봐야 한다. HUG가 공시가격의 140%를 집값으로 잡고 전세가율 90%를 곱하면 공시가격의 126%가 나오는데, 내 전세보증금이 이 선 이하일 때만 가입이 된다. 뒤집어 보면, 계약금 넣기 전에 “이 집이 반환보증에 들 수 있나”를 먼저 확인하면 그 자체가 위험한 집을 1차로 걸러주는 필터가 된다. 가입이 거절되는 집이면 나는 계약을 다시 생각해볼 것 같다. 자세한 조건은 서울주거포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가능 여부 확인

잔금 치르는 날, 순서가 전부였다

서류를 다 봤어도 마지막에 순서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대항력은 입주 더하기 전입신고를 해야 생기는데, 이게 전입신고 “다음 날 0시”부터 효력이 난다. 이 반나절 남짓한 시차가 문제다. 잔금 치른 그날 집주인이 근저당을 새로 잡아버리면, 내 대항력이 서기 전에 은행이 먼저 끼어들 수 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잔금일 당일 바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하고, 계약서 특약에 “잔금일 다음 날까지 임대인은 새 근저당을 설정하지 않는다”를 걸어둔다. 확정일자는 계약서만 있으면 입주 전에도 미리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다. 잔금·입주 → 그날 바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 다음 날 0시에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확보. 우선변제권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후순위 채권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배당받는 권리라, 이 순서를 지키는 게 곧 돈을 지키는 순서다.

특약에는 이런 것도 함께 넣어두면 든든하다. 잔금과 동시에 기존 근저당을 말소한다는 조건, 반환보증 가입이 거절되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계약금을 돌려받는다는 조건. 다만 특약 문구는 상황마다 다르니 실제 계약서는 공인중개사와 함께 다듬는 게 안전하다. 계약 마지막에 중개수수료를 헷갈렸던 적이 있어서, 이번엔 부동산 중개수수료 계산법을 미리 두드려보고 갔다.

그리고 하나 더. 계약 사흘 전에 등기부를 봤다고 끝이 아니다. 계약 직전, 잔금 직전에 한 번씩 더 뗀다. 그 며칠 사이 근저당이 새로 붙거나 가압류가 걸릴 수 있으니까. 700원이 아까울 일이 아니었다.

한 장씩 순서대로 확인하고 나니, 겁나던 건 서류가 아니라 순서였다.